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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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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워싱턴비전교회
작성일 22-06-0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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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때


크리스마스, 이보다 더 기쁘고 좋은 날이 어디 있을까!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주어진 날! (누가복음 2:14절)

예수님께서 어둡고 무정한 세상에 오셔서, 어둠을 소망으로 무정함을 따뜻함으로 바꾸시고 하나님께서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유대 땅 베들레헴은 절망과 어둠이 가득했습니다. 로마 황제이던 가이사 아구스도가 그의 통치하는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수탈하기 위하여 온 세계와 유대 땅에 호적 하라는 칙령을 내립니다. 황제의 칙령을 따라, 요셉과 마리아도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의 베들레헴으로 호적 하러 갔습니다. 로마 황제의 식민지 약탈과 억압이 있던 어두운 시대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어둠의 시대에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셨다는 것은 절망과 어둠이 지속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절망과 어둠을 소망으로 바꾸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의 세상도 절망과 어둠이 가득합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팬데믹으로 온 세상은 절망과 어둠에 갇혔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78,361,876명 확진자와, 1,724,039명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12/22/2020). 교회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성도들은 서로 교제하지 못하며, 교회마다 복음 전도와 선교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목회자들은 좌절과 절망에 앉아 있고, 우울과 암울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복음을 들고 들어갔던 선교지를 떠나온 지 몇 달이 되어 갑니다. 발만 동동거리며 애타며, 파송 교회들의 눈치를 보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날들이 절망의 먹구름에 뒤덮여 있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던 때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절망과 어둠의 현실 가운데 이 세상의 소망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던 유대 땅 베들레헴은 무정했습니다. 요셉은 만삭이 되어 해산날이 가까운 산모 마리아를 데리고 150km 정도 되는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기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가는 거리는 200km 이상) 거리를 여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땅 베들레헴의 어느 누구도 먼 거리를 여행하여 지쳐 있는 요셉과 마리아를 따뜻하게 맞아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쉴 수 있는 여관 하나 없어, 아기 예수님은 태어나 말 구유에 눕혀졌습니다. 너무나 무정하고 쓸쓸한 장면입니다. 

지금 우리의 세상도 무정합니다. 이웃들의 어려움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득한 세상이지만 쇼핑몰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양손에 크리스마스 선물 새 옷, 새 신발, 새 장난감… 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쇼핑한 선물을 차에 가득 싣고 집에 가는 길에서, 선물하나 살 수 없는 가난하고 배고파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게을러서 저렇게 구걸한다고 하며 비웃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지갑을 열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지금 우리의 세상은 정이 없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무정한 세상에 따뜻한 선물이 되어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선물로 자기 자신을 주신 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 맡긴 우리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무정하여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생명을 주어 우리를 살리러 오셨습니다. 무정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38-39절) 

자기 자신을 희생하시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신 것은, 우리도 세상에서 필요함이 간절한 자들의 선물이 되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느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보람과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얻어진 보람과 삶의 의미는 우리 영이 하늘의 삶을 살게 해주는 영의 양식이 됩니다. 보람과 삶의 의미를 느낄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힘이 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살아 낼 때 보람과 삶의 의미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 세상에 세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먹은 음식으로 어떤 사람은 비계와 똥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일과 좋은 유머를 만들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우리는 음식을 먹고 무엇을 만들고 있습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의미와 보람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예수님의 오심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들은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연약한 지체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연약한 지체들의 시린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 곁에 한 걸음쯤 다가서려 할 때 우리는 그들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보다 더 기쁘고 좋은 날이 어디 있을까?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주시는 그 놀라운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가운데 가득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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